자그마치 43년이다. 온전함이 없는 곳, 사람 손길이 간절한 곳에 ‘희망’을 싹틔운 시간.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고통을 함께 하는 게 전부인 세월. 말도 설고, 물도 설고, 모든 게 설기만한 곳에서의 삶을 ‘희생과 헌신’으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같이 호흡하며, 살을 부대끼는 것,‘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렉’은 이를 ‘사랑’이라고 한다. 전남 고흥군 소록도 한센인 마을 주민들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을 “갈색머리의 파란 눈을 지닌 천사”라고 부른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오스트리아인 간호사이다. 한창 아름다움을 만끽할 20대에 이들은 8천km 거리의 후진국 시골마을 자원봉사를 선택했다. 평소 환우와 약자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소망을 실천하기 위해 소록도를 찾았다. 당시 대한민국이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낙후가 심한 후진국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돌봐야 할 ‘사람’, 그 대상만이 전부였던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대적으로 3대 악병으로 불린 한센병 환자를 간호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희망 안에서, 사랑 안에서 살아가면 된다”고 말한다. 간호사이면서 ‘수녀님’으로도 불린 이유가 여기에서 비롯됐음을 짐작하게 한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환자를 돌보 때 신체‧정신적 교감을 중요하게 여겼다. 장갑도 끼지 않은 채 환부를 손으로 만지고, 코를 가까이 대고 상처의 냄새를 맡는 일에 서슴지 않았다. 한센인이 위축되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도록 ‘감정의 교류’를 중요시 한다.
“간호는 환자가 앞에 있어야 간호다. 간호사들이 차트 정리하고, 의사 처방 받는 데만 신경 쓰는, 머리만 잘 회전시키는 건 간호가 아니다. 손과 발이 부지런해야 간호다.”
마리엔느와 마가렛의 역할은 한센인의 간호에만 그치지 않았다. 소록도 주민이 필요할 때면, 마을 집수리공이 되고, 수다 떠는 아낙이 되고,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됐다.
특히, 천륜을 가르는 아픈 역사를 지닌 수탄장(愁嘆場, 탄식의 장소)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더 큰 사랑을 실천하게 한다. 수탄장은 한센인 부모와 자식을 생이별 시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1달에 1번 만날 수 있게 한 통한의 공간이었다. 한센인에게 수탄장은‘애증’이나 다름없었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이러한 비통한 현실 앞에 기꺼이 아이들의 어머니 역할을 대신했다. 한센인의 고통을 오롯이 보듬었다.
고 이태석 신부가 떠오른다.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인 이태석 신부는 아프리카 수단의 톤즈 지역에서 의사, 성직자, 기술자 등 마을이 필요로 하는 역할에 인생을 바쳤다. 대장암으로 유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그는 톤즈를 걱정하고, 사랑을 실천했다. 내전이 끝나지 않아 목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에서 그가 지키고 싶었던 건, 단지 병들고 고통 받는‘사람’이었다. 전쟁의 상흔과 시대적 혼란을 겪으면서 구원의 손길이 필요했던 1960년대 소록도를 찾은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마리안느와 마가렛은 건강에 이상이 생기자 편지 한 통만 남기고 고국으로 떠났다. 자원봉사자 신분으로 “자신들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말을 전했지만, 병든 자신으로 인해 소록도 주민이 겪을 불편함을 먼저 고민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가장 외롭고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다는 마리안느와 마가렛. 코로나 감염병 시대에 이들의 ‘인류애’는 더욱 숭고한 가치로 기록될 것이다. 이들이 보여준 ‘희생과 헌신’은 우리가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상기시켜야 한다.

편집위원/도시·지역개발학 박사 최종호 moon20105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