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너무 잘 헤아려 무엇이든 먼저 행동해 버리는 사람이 있다.
상대의 질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 그건 말이죠…” 하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대의 대답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아, 이런이런 말이지” 하고 일찌감치 자기 마음대로 정리를 해버린다.
누군가가 나에게 질문하는데 “저분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렇지요?” 하고 나를 대신해서 대답한다.
무엇이든 금방 이해하고 주위 사람들이 꾸물대는 것을 못 기다리는 것이다.
‘나 머리 좋지요? 이해도 빠르고’라고 말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당신들은 머리 회전이 느리군요’라는 말을 듣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좀 그렇다.
너무 성질급하게 하지 말고 조금만 여유 있게 다른 사람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해가 빠르다’고 하는 것은 타인과의 공감력이 크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점은 타인과 자신을 단순하게 한 묶음으로 엮어 버리는 결점도 갖고 있다.
물론 타인과의 일체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도 쓸쓸하다. 주위 사람들과 똑같은 기분을 공유하고 똑같은 체험을 서로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는 다른 사람과 달라’라고 유니크한 개성을 가진 존재임을 주장하고 싶은 기분도 든다.
아이가 크면 “나는 아빠와는 달라”라고 주장하게 된다. 일부러 부모가 하는 말에 반항하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이 어머니, 아버지와는 다른 인간임을 주장하는 것은 자연스런 성장 과정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타인과 다르다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동시에 타인과의 공감도 중요하다. 그 어느 한쪽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타인이 자신의 생각을 이해하지 않는 것도 쓸쓸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척척 다 알아맞히는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아 사귀기 어렵다.
옛날얘기에 “너 지금 나를 무섭다고 생각하고 있지?”라고 말하는 바보가 있었는데, 이래서야 누구나 도망가고 싶어진다.
“당신은 지금 이런 상태지?”라고 함부로 상대의 기분을 이해하는 사람이 왠지 께름칙하고 거북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좋은 사람은 타인과의 공감력이 크지만 ‘타인은 타인’이라고 구분하는 건조함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의 질문도 나의 대답도 전부 혼자서 하지는 않는다.

추교등 기자 dbskj@hanmail.net        추교등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