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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함축의 미학
2017. 10.15(일) 11:25

조상열 대표
동양의 문화는 스스로를 낮추고 감추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지식이 넘쳐 오만한 사람보다는 조금은 부족하지만 겸손한 사람을, 영특한 사람보다는 덜해도 착한 사람을 후덕하게 여긴다. 말과 글에 있어서는 요설(饒舌)이나 잡문(雜文)보다는 은유(隱喩)와 함축(含蓄)을 귀히 여긴다. ‘고전(古典)’이 오늘날 인문학의 원천(源泉)이 되어 빛을 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석가가 연꽃을 들어 제자들에게 보였다. 모두가 그 뜻을 몰라 의아해 할 때, 가섭만이 석가의 의중을 헤아리고 웃음을 지었다. 바로 염화시중의 미소이다. 선종 수행법에 부처가 설법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不立文字), 곧바로 부처의 마음을 중생의 마음에 전하는 이심전심의 수행이다.

남명 조식의 제자 정탁(鄭琢)이 출사에 이르러 하직 인사 차 스승을 방문했다. 정탁이 한 말씀 가르침을 청하자, 남명은 봉투를 내밀며 “집 뒤 안에 소 한 마리 있으니 끌고 가라”는 것이었다.

정탁이 가보니 소는 없었고, 봉투 속에는 소 우(牛) 한 글자가 들어있었다. 스승은 조급하고 끈기가 없는 제자의 성품을 경계하여 소에서 배우라는 사훈을 내린 것이다. 정탁은 훗날 스승의 가르침을 가슴 속에 새기는 처세로 정승까지 올랐노라 회고했다. 예컨대 게으른 자에게는 닭 계(鷄), 불효한 자식에게는 까마귀 오(烏)자를 써 준 것도 은유와 함축의 교훈이다.

공자는 “글은 말을 다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 하였다. 가장 함축적인 의미와 상징성을 담고 있는 것이 시와 그림일 것이다. 시와 그림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詩中有畵 畵中有詩). 한말 고종이 진도의 소치 허련을 불러 장난삼아 춘화도 한 장을 그려 바치도록 명했다.

고심하던 소치는 깊은 산속 외딴 집 토방 섬돌위에 남녀 신발이 한 켤레씩 놓인 그림을 그려 바쳤다. 깊은 산속 닫힌 방안에서의 은밀한 일사는 알아서 상상하라는 재치를 담은 작품이다.

한 사내가 나귀 타고 가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시를 지어 마음을 보낸다.

“心逐紅粧去(심축홍장거) 마음은 미인을 따라 가고 있는데 / 身空獨倚門(신공독의문) 이 몸 부질없이 문에 기대 서 있네”

여인은 나귀에 실린 연정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듯 은은하게 화답한다.

“驢嗔車載重(려진거재중) 나귀 짐이 무겁다 투덜대더니만 / 添載一人魂(첨재일인혼) 수레에 한분 넋이 더 실려 있었구려”

예부터 남녀가 만나는 장소로 우물이 자주 등장한다. 우물 井(정)자는 음과 양의 교합과 생산, 풍요를 상징한다. 우물에서의 만남에 약방감초는 버드나무이다. 헤어질 때 버들가지를 꺾어주는 풍습. 버드나무 류(柳)와 머무를 류(留)의 중국 발음이 같다. ‘버들가지를 꺾는다’는 ‘절류(折柳)’는 이별과 재회에 대한 염원을 담는다.

“묏 버들 가려 꺾어 보내노라 님의 손에 / 자시는 창밖에 심어 두고 보소서 / 밤비에 새잎 곧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선조 때의 명기 홍랑이 정인이었던 고죽 최경창과 이별 할 때 지은 시조이다. 구구절절한 장문의 글보다 버들을 등장시킨 한 수의 단시가, 오히려 정별의 절절함을 극대 시킨다.

추사 김정희의 유명한 세한도는 제주 유배지의 작품으로 갈필(葛筆)의 거친 선 몇 개를 이용해 완성했다. 화선지에 측백나무 두 그루와 소나무 두 그루, 곧 쓰러질 듯 초라한 집한 채가 전부이다. ‘세한(歲寒)’이라는 말은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彫)’라는 구절에서 비롯한다. 곧 추운 겨울에 이르러서야 송백이 시들어 죽지 않음을 알 수 있다는 뜻. 부귀와 권력을 좆는 세상에서 지조와 의리의 소중함이 그림 속에 녹아 있다. 세한도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 받는 이유는 그림 속에 감춰진 함의(含意)가 무궁해 뭇 사람들에게 강한 인문적 감흥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진가는 말이 없어도 알아보는 안목 앞에서는 더욱 빛나고, 구슬은 진흙 속에 있어도 윤택함을 잃지 않는다고 했던가. 구차한 필설에 앞서 무언의 행동이 더 귀하고 은유와 함축의 극미, 촌철살인(寸鐵殺人)의 기개가 멋진 법. 고대 그리스의 사포라는 여류시인의 시 한 수다.

“나의 두 손으로 / 하늘을 만질 수 있었다니 / 내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 / 그대의 눈길은 어디를 향하는가”
대동문화 대표 조 상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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