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가 끼룩끼룩 나는 남녘, 한려수도의 정겨운 토속적인 정취에 흠뻑 젖어 살았던 소년시절을 회고해 본다. 돌이켜 보면 소년시절의 정서는 오늘의 시심(詩心)을 불러일으키는 바탕이 되지 않았나 싶다.

필자는 여수중학교 재학 시절부터 큰 시인이신 정소파 스승님의 가르침으로 문학에 심취했었다. 소년기와 청년기를 지나며, 그리고 노년에 이른 현재까지도 문학의 소중한 정신세계에서 떠나본 적이 없다.

필자는 1980년대부터 광주·전남이 대한민국 문학메카임을 정립하고자 했다. 광주·전남이 예향이요, 문화수도로 일컬어지고 있기에 이를 뒷받침 하는데 문학만큼 탄탄한 장르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이 무렵 그러니까 1983년 새해가 밝았다. 탄허 큰스님께서 어느 날 연락도 없이 광주로 오셔서 필자 사무실에 방문하셨다. 갑자기 뵈는 자리였기에 준비 없이 모셨다. 오찬을 마친 후까지 큰스님이 세상만사에 대한 예지적 말씀을 하셨던 시간은 약 7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어느덧 석양이 들자 오늘은 광주에서 주무시고 내일 떠나시라고 말씀을 드렸으나 스님은 “아니, 인연(因緣)이 다 되었어요” 하며 일어서셨다. 월정사로 가신다는 말에 “그럼 언제 날 잡아 큰 스님을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 “역시 인연이 다 되었다”고 하시며 훌훌 떠나셨다.

그 후 6개월 만에 탄허 큰 스님이 열반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인연이 다 되었다고 하셨구나’ 하고 깨달으니 어찌 후회막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제야 큰 스님 영명하심을 다시 깨달았다.

탄허 큰스님은 학승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를 거울같이 정리한 예지를 갖춘 귀하신 선사였다. 큰스님의 말씀은 삶의 지침이 되곤 한다. 큰 스님은 “한국의 미래는 밝다. 앞으로 한국은 정신문명 중심의 국가가 될 것이며, 진리와 지혜로운 사람이 많이 나오는 세상이 열린다”고 하셨다.

인간은 현대를 살아가며 삶의 본질을 망각하고 물질만능의 늪에서 길을 잃는다. 인간적 삶을 외면하고 개인적 욕구에만 집착하는 인간들은 본질에서 무너져내리며 허무한 종말을 맞을 것이다. 고귀한 순간, 삶의 미래를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정치도 종교도 아닌 바로 문학이다.

필자는 1995년 전남문협 회장직에 있을 때 전국 시도 문협 회장들과 뜻있는 전국 문학인들의 참여로 대전에서 시도 문학인 교류대회를 가졌다. 시들어가는 문학을 문학인들 스스로가 일으키자는 호소로 매년 전국시도문학인 교류대회 개최를 제안했지만 큰 뜻엔 동의는 하나 선뜻 앞장서겠다는 문학인은 없었다. 필자가 나서기를 결심하고 2001년도부터 전국지역문학인교류대회를 개최, 광주·전남이 대한민국문학메카임을 선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26년이란 시간의 흐름 속 지난해까지 참여한 문학인이 무려 1만3,550여 명에 이른다.

전국지역문학인교류대회는 1박 2일간 다양한 문학행사를 통해 문학중흥을 논하는 유일한 국내행사일 것이다. 문학메카본부는 또한 문학메카 정립을 위한 골격을 수립하기 위해 수 년 동안 ‘광주·전남 문학통사’를 집필했다. 장르별 각종 문학적 사료집 등 심혈을 다해 집대성하는 작업은 내일의 후손들에게 금자탑이 될 것이라는 자부심으로, 고된 나날이었지만 흐뭇하게 작업을 완수할 수 있었다. 26년의 세월 동안 각종 준비와 교류대회 등을 통해 문학메카 정립의 절차를 완료했음은 역사적으로 보람된 일이라 하겠다.

사무실 운영과 교류대회 준비와 함께 일 년 내내 전국 문학인들의 산발적 접촉과 크고 작은 문학 행사 등에 드는 비용은 시루에 물 붓듯 했다. 밀려오는 서글픔은 말로서 다할 수 없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어두련다. 30여 년 남편에게 시달린 내조자는 병상에서 호소하고, 자식들 또한 아버지와 문학메카를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중단하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필자의 개인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사람에게 희망을 주지 않으면 더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제 문학메카 정립이 끝나고 ‘대한민국문학메카 메모리얼 파크’ 건립을 향해 채찍질하고 있다. 방대한 역사적 작업이며, 개인이 아닌 인류의 산물이니 만큼 미래를 위해 누구라도 적극 참여해 주길 간곡히 바란다.

시인·문학박사 황하택